2009/07/03 00:46

K에 대한 보고서 - 전기 꺼져 읽은거


0.
시드노벨의 작년 7월 신작에는 이 작품이 끼어 있었습니다. 당시 이 작품과 같이 나왔던 다른 두 작품은 등장하자마자 한국 라이트노벨계에 대한 진지한 토론...보다는 떡밥계를 정ㅋ벅ㅋ했던 정의소녀환상(예시). 그리고 그냥 잊혀질 뻔 했지만 어느 군바리횽의 노력으로 인해 가까스로 재발견...되지는 않고 그냥 잊혀진 소울루프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소울루프는 3권까지 잘 나오고 있지요.

지금은 아마 시벨 편집부에서도 이「K에 대한 보고서」(이하 '보고서')를 잊어버리고 있는 모양이지만, 전 그 당시 7월의 세 신작 중에 이 작품이 제일 기대되었었습니다.
'아, 드디어 시벨에서도 중2병달빠스러운 병맛 라노베 대신에 할리퀸로맨스스러운 병맛 라노베가 나오는구나! 물론 어찌되었든 병맛이긴 마찬가지겠지만 기왕 병맛이 될거면 양산형 병맛보다는 조금이라도 특이한 게 낫겠지 우왕ㅋ굳ㅋ 물론 난 병맛라노베는 안삼 깝ㄴㄴ'...... 대략 그런 느낌이었죠. 그러고 나서 수능도 치고 대학도 입학하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런 이벤트에 본의 아니게 말리게 되면서 결국 읽게 되었습니다. 아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ㄹ 리가 없잖아 잊지않겠다 다이스갓

뭐 그래도 나름 새로운 병맛일 거라고 기대했었던 작품이니까 한번 표지나 볼...까...






뭐 개새끼야?




1.
그래요, 결국 이 소설도 중2병적인 electricity에 대한 소설이었습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칩시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제가 잘못한 일이죠. 애초에 왜 할리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지만.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전기'라는 용어에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드노벨에서 줄기차게 '전기'를 자신들의 트레이드마크로 써먹는 것이 참 눈꼴사납습니다. 마치 S모 뮤지션이 '네이쳐 파운드'라는 알 수 없는 장르를 들먹이면서 파닥파닥거렸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대체 왜 그 단어를 써야 하는가, 같은 의문은 지겨워서 던지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기'라는 카테고리에 대부분의 작품들을 옭아매는 처사입니다. 왜 꼭 전기-달빠-중2병-판타지-이능력-배틀 라노베만을 고집해야 합니까? 왜 시벨에는「토라도라」같은 일상 러브코메를 찾아보기가 힘듭니까? 물론 시벨이 출범한 지도 이제 2년이 되었으니 그 정도로 삽질하다 보면 뭔가 괜찮은 작품이 나올 만도 하겠지요. 근데 좀 다른 데도 삽질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무튼 이건 시벨을 까는 게 아니라 '보고서'를 까는 거니까 시벨에 대한 불평은 이 정도로 하고,




2.
'전기연애담'이라고 띠지에 떡하니 써붙였으니까 우린 이 작품이 이능력배틀물에 러브코메의 속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망했습니다. 정말 좋게 봐줘서 좆ㅋ망ㅋ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재미없습니다.


먼저 러브코메 파트.
소설의 구성을 보면 여주인공인 노재은과 남주인공인 케이(ㅇㅇ. 당신이 생각하는 그 K 맞음)가 초반에 만나서 중반까지 티격태격하는게 절반, 그 다음에 재은이 현우(aka 쇠사슬)한테 납치당하고 그걸 케이가 구하러 가는 게 나머지 절반입니다. 이 모든 전개 동안 당신이 좋은 러브코메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종류의 두근두근함도 느낄 수 없습니다. 러브코메에서 두 주인공이 처음부터 서로 사이가 나쁘다, 고 하면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순간순간에 어느 정도 서로의 마음을 끼워넣으면서 완급을 조절해야 되죠. 근데 '보고서'에서는 그런 거 없습니다. 앞의 절반에서는 그냥 무조건 티격태격, 그러다 어 재은이 납치됐네? 구하러 가자→케...케이 좀 멋진듯ㅋ이라는 완전평면 전개. 이건 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물론 토라도라급의 그런 걸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모름지기 러브코메에는 '맺어질 것을 알면서도 두근거리는' 맛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 소설에는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독자들을 설레게 할 만한 요소를 찾기가 힘듭니다.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을 세워놓고 기계적으로 러브코메 노선에 끼워 맞춘 티가 역력하게 드러나죠. 그러다 보니까 여주인공이 남주인공한테 끌리게 되는 이유도 명확하게 안 드러납니다. 이전에는 케이 까기 바빴던 노재은 양은 잡혀가자마자 '도...도와줘 훌쩍' 이러고 있고. 뻣뻣해요. 한 마디로.

그 다음은 이능력배틀 파트.
에스퍼 배틀입니다. '지향'이란 걸 해서 없는 무기를 만들어서 싸운다고 합니다. T모 회사의 빨간머리 주인공이 쓰던 기술과 아아아아아아아아주 비슷하긴 합니다만 어차피 독창성을 기대했던 건 아니니까 넘어갑시다. 아무튼 걍 놓고만 보면 써먹기는 괜찮은 설정이긴 합니다. 말싸움으로 집중력을 흐트려서 무기를 없애버린다, 라는 전투법은 나름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될 것은 전투씬의 퀄리티입니다. 심하게 재미없습니다. 일단 박진감과 긴장감이 없다는 점에서 흥미도 급하락. 작가가 러브코메 파트에 힘을 너무 기울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그 힘을 기울인 게 저모양이라는 건 논외로 치고 딱히 '이 작품을 봐야 할' 정도로 재미있는 전투씬을 뽑아내지는 못합니다.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기껏해야 '지향 시간이 얼마 안남았고 어쩌고' 정도 수준밖에 안 되니까 말이죠. 거기다 병맛을 추가하는 요소는 아까 위에서 말한 말싸움 전투법입니다. 집중력을 흐트린답시고 서로 조루라느니 화장발이라느니 하는 험담을 주고받는데, 그냥...... 꼴사납습니다. 게다가 뒤에 가면 그것도 안 써먹고 그냥 싸웁니다. 그러니까 이 전투법은 작가 스스로 수명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드러낸 셈인데, 어.......병크

원래 카피 보고 사는 책은 아니지만, 그냥 참... 그렇네요. '전기연애담'인데.




3.
큰 축을 이루는 문제는 저렇고, 다음은 사소한 문제들.


a. 여주인공 노재은이 자주 들리는 빵집에는 친구 유리와 그녀의 오빠 주몽이 있습니다. 둘 다 재은과 친한 사람들입니다. 작품 중반쯤 오면 그 빵집에 은혜라는 여자가 수습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중반 이후에 재은을 납치한 건 현우라는 사채업자와 그의 부하 이완입니다. 이완은 재은한테 자기 여자친구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은혜라는 여자는 에스퍼라서 재은을 노립니다. 그리고 이 은혜가 이완의 여자친구입니다.

존나 뜬금없습니다. 저도 읽을 때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는 현우한테 죽습니다. 정말 밑도 끝도 없습니다.



b.
...특이한 것은 남자의 머리칼 색이었다. 한 점의 음영조차 없는, 희미한 달빛만으로도 온연한 색채를 내뿜는 완연한 백발. 그 백발이 드리워진 얼굴은 무척 섬세했다. 재은은 그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9년 만인가."
적요(寂寥)를 깨고 그가 말했다...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남자의 것이 분명한 저음이건만 노래 같은 운율이 깃든 따스하고 깊이 있는 목소리...
...아이스 블론드에 잿빛 눈을 가진 그가 재은을 향해 웃으며 물어 왔다...


...분명 제가 우연히 읽었던 할리퀸 로맨스에서도 저것과 비슷한 표현을 본 적이 있었는데 말이죠.
그러고 보니까 케이는 명품 입으면서 여자들 낚고 자기를 왕자라고 하면서 벤츠도 몰고... 의심이 점점 더 짙어집니다. 이 작가 혹시 호빠에 굶주린 건 아닐까(←)

아 그리고 저기 한자로 써진 단어는 그냥 못 본 척해 줍시다. 편집부에서 전기물 카피 내세우면서 쓰라고 그럤나 봐요.



c. 이 소설에서 재은이 보고서를 쓰는 장면은 92쪽하고 114쪽하고 311쪽에서 딱 3번 나옵니다.
참고로 이 소설의 제목은「K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e. 사실 주몽유리 남매라던지, 엔즈라던지, 재은 오빠 재율이라던지 후속권이 나오면 써먹을 만한 복선은 많이 깔아 놓았습니다. '지향'하는 무기도 칼, 방패, 창, 쇠사슬...이라서 나올 건 다 나온 듯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뭔가 색다른 게 나올 것 같긴 합니다.

근데 후속권이 안나옵니다. 아 망했어요ㅋㅅㅋ




4.
그래서 결론을 내리자면 5,900원이 아까운 라노베 '보고서' 되겠습니다.
이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라노베는 굳이 일본 작품이 아니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이거 '사서' 읽지 맙시다. 저도 어쩔 수 없이 읽고 나서 감상을 쓰고 있긴 하지만 후회하고 있습니다. 시벨은 이제 '전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괜찮은 작가나 좀 발굴해서 잘 키워주길 바랍니다.

근데 이번 7월 신작도 이딴 카피로 나오네요. 아 젭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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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트노벨 로또 2009/07/03 18:29 #

    라이트노벨 로또는 라이트노벨 서평이나 감상을 쓰기 위해 어떤 모임의 참가자들이 정기적으로 행하는 행사입니다.참가자들은 IRC채팅방(주사위나 사다리가 되면 다른것도 상관 없지만)에 모여서 다이스 스크립트로 주사위를 굴려서, 최저값이 나온 사람이 그 달에 정한 라노베를 읽고 자기 블로그에 서평 내지는 감상을 합니다.이 모임에서 고르는 라노베의 기준은 '국내에서 출판된 라노베일 것.' 입니다.7월부터 해 오고 있습니다.라이트노벨 로또의 서평......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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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요르다 2009/07/03 02:03 # 답글

    한번 먹히면 이제 안먹힐 때까지 우려먹겠다는 신념이군요.

    아 근데 시벨에도 뭐 일단 전기물 아닌 것도 있으니까... 대표적으로 청춘학원물 시리즈가 있겠네요. 우리들의 커튼콜이나 GGG, 그녀는 교주다 등등(그녀는 교주다는 못봤으니 패스).
  • Laika_09 2009/07/03 13:10 #

    요르다// 전기물 아닌 것도 있죠. 대체로 그런 작품들 중에서 물건이 나오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런 걸 보면 그쪽으로 전환을 해볼 만도 한데 꿋꿋하게 전기를 파는 이유는 대체 뭘까요~ㅅ~
  • 제렘 2009/07/03 02:39 # 답글

    아 갑자기 무한한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ㅠㅠ
  • Laika_09 2009/07/03 13:11 #

    제렘// 괜찮아 그래도 이제 썼어
    ㅠㅠ
  • 레이츠키 2009/07/03 11:57 # 답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오 신이시여
  • 레이츠키 2009/07/03 11:57 #

    앗 시발 저 옆에 아이콘 뭐임?
    하지루스가 아이콘으로 달리다니 내 아이덴디티는 대체 어디로!?
  • Laika_09 2009/07/03 13:12 #

    레이츠키// 로고이미지 바꾸면 아이콘도 바뀐다고 하네여

    근데 횽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굳이 바꿀 필요도 없지 않나 음
  • ... 2009/07/03 16:32 # 삭제 답글

    시드뿐 아니라 라이트노벨 대박작 대부분이 전기소설로 나옵니다만? 일상물로 대박작은 오히려 드물죠. 판타지는 늑대와 향신료 하나고.
  • 레이츠키 2009/07/05 07:14 #

    모 인터넷 서점 선정 대한민국 남성이 읽는 책 BEST10에 들어간 토라도라를 보시죠.
    한 10번만 읽고 오세요.
    참고로 8~10권은 100번씩 읽어야 함.
  • Laika_09 2009/07/09 13:49 #

    ...// 헐 지금 오펜하고 슬레이어즈 무시하나여ㅋ

    랄까, '전기소설'이라는 용어 자체가 귀에 걸어서 귀걸이 수준의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뭐라고 함부로 말하기 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지금 딱히 생각나는 성공적인 전기물은 금서목록 정도밖에는 없군요. 제가 보기에는.
  • 로쉽 2009/07/03 23:20 # 답글

    쓰느라 고생했다 드디어 이걸 보는군 ㅠㅠ

  • Laika_09 2009/07/09 13:50 #

    로쉽// 이제 타브횽만 쓰면 된다ㅋㅅㅋ
  • Leviathan 2009/07/05 01:53 # 삭제 답글

    시벨, 컨셉은 '전기'군요. 시벨, 이래서는 안되는데....


    아 어감이 너무 좋아요 시벨 ㅠㅠㅠㅠㅠ
  • Laika_09 2009/07/09 13:50 #

    레비아탄// 이런 시벨ㅋㅋㅋㅋㅋㅋㅋ
  • 뭐.. 2009/08/05 17:52 # 삭제 답글

    왜 '시드노벨'에 집착하시나요?

    토라도라같은 러브코메디를 찾으시는 듯 보이는데 그럴바엔 시드노벨 대신 러브코메디 물을 보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애초에 시드노벨이 러브코메디 장르도 아닌데 그 장르가 없다고 불평하는 건 아닌 듯 싶네요.
    작성자께서 본문에 언급하신대로 시드노벨의 역사도 짧고 작가층도 엷어서 이제야 걸음마 단계의 시드노벨이 원조인 일본의 라이트노벨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네요.

    '전기'라는 단어에 집착한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작성자께서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듯 보이는데...
  • Laika_09 2009/08/05 23:34 #

    뭐...// 역사는 만들어 나가는 거고, 작가야 발굴하면 되는 겁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관점이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신생 라이트노벨 레이블이 여러 가지 장르를 시도하면서 다양한 활로를 개척해 나가는 것보다 한 가지 장르에만 몰두하는 광경이 별로 곱게 보이지가 않습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게 그런 안이('안정'이 아닙니다)한 행보에 대한 면죄부가 되진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 그네들이 내세우는 전기물보다 그렇지 않은 장르에서 괜찮은 작품이 더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대체 왜 전기를 그렇게 고집하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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