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simple

대단하군요. 너무나 대단합니다.
과연 이 작품에 대한 극찬들은 헛소문이 아니었네요.

간만에 순도 높은 우울계 작품을 보았습니다.






스토리는 이안이라는 사내의 결말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일생을 되짚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어릴 적부터 가족과 관련해 그다지 평온하다고 할 수 없었던 그의 일생은 우연과 불운이 겹치고 진실이 하나씩 밝혀져 나가면서 확실하게 암울해집니다. 결국 결말까지 그에게 행복, 혹은 그가 바라던 것은 끝끝내 찾아오지 않죠. 그 비극이 어떤 것인지는 제 부족한 필력으로 차마 표현하기 어렵고 그렇게 하는 것도 옳지 않을 테니, 그냥 책을 사시길(...)

아무튼 그러한 비극 ─ 사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상당히 익숙한 ─ 임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감정과잉에 빠져서 가족애의 과잉분출이라던지 감정이입을 강요하는 클리셰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유는 역시 이안의 입장에서 플롯이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겠죠. 이 작품은 철저하게 방관자, 관찰자의 입장에서, 혹은 이안의 친구인 소설가 짐의 눈을 통해서 그를 보여줍니다. 독자는 그렇게 해서 이안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이안이 던지는 말들은, 가슴에 확실하게 칼을 꽂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물론 오노 나츠메 작가 특유의 그림체도 한 몫 합니다.
얼핏 보자면 그냥 귀여워만 보이는 그림체이지만, 사실 이런 실사체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그림체로 이런 이야기를 다루면 외관과의 반작용으로 이야기가 더 깊어지는 법이죠. 용기사씨 그림체가 쓰르라미에 왜 어울리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실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우울한 것만은 아닙니다.
에필로그에서의 대화는, 이 우울한 남자가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꼈을 듯한, 그런 따스함이 느껴져요. 에필로그뿐만이 아니라 작품 전체에서 그런 기운이 느껴지죠. 우울하되, 냉정하지 않게.

......물론 결론적으로는 그러한 따스함이 비극에 화룡점정을 찍는 붓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이 작품을 올해 안에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또 다른 작품인 '라 퀸타 카메라'와 '납치사 고요' 1권도 나온다고 하니, 기대되네요.




p.s 제가 지금까지 본 만화 가운데 가장 컷 구성을 잘 한 작품에 속할 것 같습니다.
컷 구성이 잘 되었다고 느낀 작품은 많았지만, 구성이 스토리 전달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작품은 많지 않거든요.

p.s 2 사실 이 만화는 이렇게 분석적으로 쓰기보다 캐릭터 가지고 찌질찌질거리며 쓰는 글이 더 괜찮을 듯 한데(...)
조만간 기회가 되면 이 작품에 대해서 다시 써볼지도 모르겠네요.

p.s 3 이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성격에 장애가 좀 있는 사람 같네요. 선천적으로 말이죠.
물론 작품을 위한 장치겠지만, 사실 읽는 내내 '제발 화라도 좀 내'라는 심정이었습니다. 이렇게 너무 '새하얘서' 견디기 힘든 주인공은 처음 보는 듯. 정말 에필로그의 '그녀' 말이 맞습니다 어휴ㅠㅠ

by Laika_09 | 2007/12/21 23:44 | Clap Your Hands!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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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Jini's home at 2007/12/22 09:47

제목 : [만화]NOT SIMPLE
©ONO natsume/SHOGAKUKAN/애니북스 심플하지만 심플하지 않은… 오노 나츠메의 낫 심플은 작품의 타이틀 그대로 간단하게 보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작품이다. 세밀하게 묘사되는 데생 대신 단순화되어 있는 펜선을 따라 그려진 캐릭터, 배경 등 작품의 시각적인 부분과 운이 없는 남자의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 구조는 읽어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쉬운 편이다. 하지만 보다 세세하게 살펴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단순화되고 치밀하지......more

Commented by giantroot at 2007/12/21 23:58
오.. 낫 심플. 표지 보고 땡겼던 만화였는데;;

의외로 일본 만화도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작품이 많다능;; 제 머리 속에서 마쓰모토 타이요, 키토 모히로(그림체 자체는 나츠메나 타이요보다 전형적 일본 만화풍이지만, 내용은 상업적 만화를 초탈한 아슷흐랄-_-;; 물론 괜찮음.)가 떠오르네요.
Commented by Leviathan at 2007/12/22 14:41
으음...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만화이군요. 나중에 동아리 비평회에 텍스트로 한번 써보아야 겠군요^^
Commented by Laika_09 at 2007/12/23 19:40
자이언트루트님// 키토 모히로는 아마 보쿠라노....의 작가였지요?
그런 식으로 비주류 작가들이 많고 인기도 있다는 게 옆나라의 또 다른 강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는 뭐 주류고 비주류고 죄다 GG니(...)

Leviathan님// 조금 대중적이기 힘든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맞으신 것 같다니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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