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회의 일존』『학생회의 이심』『학생회의 삼진』
아오이 세키나/이누가미 키라, 송덕영 역
(후지미 판타지아 문고; 2008/2008/2008
익스트림 노벨; 2009/2009/2009)
1. 이 시리즈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반응은 폭발적...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시끄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잡담소설'이라는 신장르의 개척이라느니, 기존 소설...이랄까 라이트노벨의 내러티브 형식을 파괴하는 신선함이라느니, 하여간 여러가지로 화제가 되었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나는 고3이라 본격적인 탈덕의 길을 걸을 무렵이었고(물론 실패했다) 정식 발매된 이듬해에는 대학생활을 만끽하느라 여전히 탈덕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물론 실패했다). 그래서 이런 후지판타스럽지 않은 오덕스러운 라노베 따위를 볼 시간은 없었다.
는건 뻥이고, 내가 이 작품을 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이런 라노베가 재밌을리가 없잖아? 한 단어로 줄이면 '편견'이다.
제대로 된 이야기도 없이 그냥 학생회실에서 잡담이나 하는 라노베가 도무지 재미있을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이 작품이 하나의 경계선으로 느껴졌다. 이딴 거나 보고 낄낄거리는 놈들하고 나는 달라! 나는 그래도 재미없는 걸 보고 낄낄거리는 오덕은 아니란 말이다! 학생회 보고 웃는 놈들은 수준낮은 오덕! 이라는 바보같은 경계선. 사실 지금도 이러지 않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어쨌든 예전의 나는 좀 멍청할 정도로 수준을 따졌었다. 만화로 따지자면 딸기 100%와 트러블을 보는 놈들은... 뭐 이런 느낌의 기준이랄까. 써놓고 보니까 진짜 멍청하구나 나!
2. 그 후로 학생회 시리즈는 잘 팔리고 애니화도 되고 승승장구했지만 나는 여전히 관심이 없었다. 『소나기X소나기』를 읽기 전까진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나기가 내 라노베 탐독사의 전환점 비슷한 게 아니었다 싶다. 비록 포풍처럼 까긴 했지만 어쨌든 난 소나기를 실제로 재미있게 읽었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나 스스로도 이런 걸 재미있게 읽을 줄 몰랐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 때부터 어떤 라노베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겼다.『K에 대한 보고서』를 읽었을 땐 하나도 안 그랬었는데 말이지(...)
그런 이유로, 결국 학생회 시리즈도 시도해보게 되었다. 3권까지 다 읽은 소감은 소나기와 비슷하다. 이런 걸 재미있게 읽을 줄 몰랐는데 재미있게 읽힌다, 는 것. 특히 형식의 측면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많이 보인다.
나는 4컷만화를 좋은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개그만화에서 그 만화 자체가 재밌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관계없이, 4컷만화라는 건 기본적으로 재미라는 '형식미'를 갖추고 있는 형식이다. 일단 4컷으로 그려놓으면 보통 만화에 비해서 웃음을 끌어내기가 훨씬 수월해지니까. 요리로 치면 미원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내가 보기에 학생회 시리즈는 4컷만화의 그러한 형식미를 라노베로 끌어들였다. 에피소드를 각 화 완결 구성으로 짧게짧게 끊어치면서 바보같은 행동+딴죽이라는 패턴으로 웃음을 유발, 동시에 여기저기 복선을 깔고 최종화는 진지한 에피소드로 해서 훈훈한 마무리. 빠르고 단편적이면서 정형화되어 있다. 4컷만화에서의 그 템포가 느껴진다.
물론 4컷만화는 만화고 학생회 시리즈는 라노베니까, 이런 비교는 사실 그냥 단순비교일 뿐이다. 하지만 학생회 시리즈가 4컷만화와 닮았든 안 닮았든 간에 기존 라노베의 긴 호흡을 짧은 호흡으로 대체하고, 그게 사람을 웃기는 데 무지막지하게 효과적인 '형식'이라는 건 분명하다.
3. 다만 그런 형식의 완성도에 비해서 알맹이에는 약간 불만사항이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웬만큼 템포가 좋지 않은 한 만담 계열의 개그, 그러니까 보케 대사에 츳코미 대사로 개그를 끌어나가는 걸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회 시리즈는... 불행하게도 너무, 너무 만담 일색이다. 솔직히 질린다고! 보케+츳코미 대사만으로 4페이지를 넘어가지 말란 말이다! 하다못해 슬랩스틱이라도 넣어! 학생회실이 몸개그에 그다지 적합한 공간은 아니지만 아무튼! 니시오 이신 정도 되지 않고서야 이렇게 '대사만으로' 개그를 끌어나가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늘어진다고!
...사실 이 부분은 내가『나는 친구가 적다』를 먼저 읽고 나서 학생회를 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같은 4컷만화형 라노베로서 나친적이 워낙 숨넘어갈 정도로 웃기기 때문에ㅋ 사실 나친적도 좀 더 배경이 다양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만담개그인 건 학생회하고 같은데 말이지. 이런 게 필력의 차이인 건가? 아니면 시모네타의 강렬함의 차이?(...)
그리고 이 시리즈의 최.악.의. 결점인 기업편.
......더 말이 필요한가? 난 3권까지밖에 안 읽었지만 이게 이 시리즈 최악의 폭탄이 될 거라는 데 손목을 걸겠다. 어설픈 흑막은 개그요소도 되지 못한다고요. 으 이거 쓰고있는 지금도 짜증이 난다;;
근데 9권까지 계속된다고요? 망했어( ´_ゝ`)
4. 캐릭터는, 긴말이 필요없다. 다들 병신같지만 멋있다.
스기사키야 이미 이 바닥에서 병신같지만 멋있는 캐릭터의 스테레오타입같은 존재로 찍혔으니까 뭐... 변태고 만능이고 이케맨(?)이고 과거의 상처도 있고 히로인들이 맨날 까지만 묘하게...랄까 까딱하면 대놓고 좋아할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점까지 완벽하게 전형적이다. 이건 크림도 치즈루도 미나츠도 마후유도 마찬가지. 다들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나가 있고 그걸로 개그를 치고 과거의 상처도 있다.
그러니까 근원을 봤을 때 전부 똑같은 캐릭터들로만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각 멤버들의 과거의 상처가 공개될 때 어딘지 모르게 단조롭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위에서 형식 얘기를 했는데, 학생회 시리즈는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형식뿐만 아니라 캐릭터 구축에 있어서도 대단히 형식적이다. 형식미가 잘 갖춰졌다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단조롭고 지루해질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사실 개그라노베에 이렇게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긴 하지만, 일단 스토리상으로 그런 '상처'에 대한 복선을 팍팍 까는 이상 그냥 넘어가기는 좀 찜찜하다. 학생회 시리즈가 캐릭터들의 상처를 울림있게 잘 봉합할지, 아니면 그런 상처조차도 형식의 하나로써 '형식적으로' 다루고 넘어갈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지만 말이다. 씁쓸하네.
5. 이렇게 불만점과 우려스러운 점이 한가득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권수를 거듭할수록 재미있어진다. 3권에 이르면 캐릭터들이 잡히고 폭주하면서 포텐이 제대로 터진다. 버릴 에피소드가 하나도 없음(기업편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완결나고 나면 어떤 에피소드가 가장 웃겼는지 앙케이트 내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참고로 현재 탑쓰리는 1권 5화, 3권 2화, 3권 3화임.
......애매하게 칭찬으로 끝내 보려고 했는데 역시 애매하다. 마무리 약하다;ㅅ; 망했엉;ㅅ;
그래도 일단 완결까지는 계속 사 볼 생각이니까 뭐... 다음 권이 재미있기를 바래야겠다.
만족도: B- / B / B+
p.s 원래는 그냥 가볍게 써 볼 생각이었는데 다 써놓고 보니까 존나 진지하고 긴 글이 되어버린듯. 첫 글부터 블로그 방침을 씹어드시고 계신다. 이래서야 이 블로그도 좀 쓰다가 찍싸게 생겼군!
p.s 2 트위터에서의 버릇이 옮았는지 그냥 반말로 써버렸다. 이제와서 존대로 고치기도 뭐하니까 그냥 이대로 갑니다ㅎ
p.s 3 나친적 감상은 3권 읽고 올라갈 예정.
p.s 4 미나츠 귀여워요 미나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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